이자는 죄악인가? 종교와 이자의 5,000년 전쟁

이자는 죄악인가? 종교와 이자의 5,000년 전쟁

돈이 돈을 낳는 일은 어쩌다 죄에서 경제의 기본 원리가 됐을까요?

SeriesFeb 15, 20267 minutes

통장에 붙은 이자 몇백 원, 대출 상환표에 찍힌 이자 몇십만 원. 우리는 이걸 계산의 문제로만 봐요. 그런데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이자는 계산이 아니라 도덕의 문제였어요. 그것도 도둑질이나 살인과 나란히 놓이던 중죄였죠. 이자를 받으면 재산을 빼앗기고 마을에서 쫓겨나던 시절이 1,000년 넘게 이어졌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느 은행 이자가 더 높은지만 따지죠.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어려운 말은 빼고,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성경이 이자를 금지했어요

지난 화에서 우리는 이자의 탄생을 봤어요. 기원전 3000년 수메르 시대부터 사람들은 곡물과 은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고, 함무라비 법전에는 이자율 상한까지 정해져 있었죠.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이 돈을 낳는 건 부자연스럽다"고 비판했어요. 이 한마디는 훗날 유럽의 종교 지도자들이 이자를 단죄할 때 두고두고 인용돼요.

다만 기독교가 이자를 금지한 근거는 철학이 아니라 성경이었어요. 구약성경 출애굽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네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받지 말라." 신약성경 누가복음에서 예수도 말해요.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주어라."

초기 기독교는 이 가르침을 아주 엄격하게 지켰어요. 서기 325년, 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회의에서 이자를 받은 성직자는 자리에서 내쫓기로 정했죠. 서기 800년 무렵에는 그 금지가 성직자가 아닌 보통 신자에게까지 넓어졌고요.

이렇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일을 중세 유럽에서는 고리대금이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이건 도둑질, 살인과 같은 급의 중죄로 취급됐죠. 적발되면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마을에서 추방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돈은 여전히 필요했어요

문제는 여기서 시작돼요. 사회가 돌아가려면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예요.

농부는 봄에 씨앗을 사야 하니까 돈이 필요해요. 상인은 물건을 떼오려면 자본이 있어야 하고요. 왕은 당장 전쟁 비용이 급하죠. 그런데 이자가 죄악이면, 빌려줄 사람이 없어요. 아무 대가도 못 받는데 누가 선뜻 내주겠어요. 1화에서 봤듯이 빌려주는 사람은 시간과 위험을 대신 짊어지는 쪽인데요. 현실의 수요와 종교의 금지가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역사는 아주 묘한 해결책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해요.

유대인이 떠맡게 된 자리

중세 유럽에서 기독교인은 이자를 받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유대교의 율법은 조금 달랐어요. 유대교도 이자를 금지하긴 했지만, 동족끼리만 금지했거든요. 구약성경 신명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네 형제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 그러나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중세 유럽의 사회 구조가 겹쳐요. 당시 유럽에서 땅을 가지려면, 또 대장장이나 목수 같은 직업 조합(길드)에 들어가려면 기독교인이어야 했어요. 유대인은 땅도 가질 수 없고 조합에도 들어갈 수 없었죠. 농사도 수공업도 길이 막혀 있었던 거죠.

결국 유대인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가 돈을 빌려주는 일이었어요. 사회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역할을 한 집단이 통째로 떠맡게 된 셈이에요.

하지만 이건 양날의 검이었어요. 돈이 급할 때는 유대인 대금업자를 찾으면서, 평소에는 "돈으로 돈을 버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이라며 멸시했거든요.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는 돈을 못 갚으면 살점을 떼어가겠다는 유대인 대금업자 샤일록이 나오는데, 당시 사람들이 대금업자를 어떻게 봤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에요. 유대인에 대한 반감의 뿌리 하나가 여기 박혀 있죠.

같은 시기, 이자를 금지한 또 하나의 종교는 전혀 다른 길을 찾아냈어요.

이슬람은 이자 대신 나누는 쪽을 골랐어요

이슬람에서는 이자를 리바(Riba)라고 부르고, 코란에서 분명하게 금지해요. "알라는 매매를 허용하셨으나 리바는 금지하셨다." (코란 2:275)

흥미로운 건, 이슬람이 이자를 금지하면서도 이자 없이 돈이 도는 방식을 따로 만들어냈다는 점이에요.

대표적인 게 무다라바(Mudarabah)예요. 돈을 가진 사람(투자자)과 사업 능력이 있는 사람(사업자)이 파트너를 맺어요. 이익이 나면 미리 정한 비율로 나누고, 손실이 나면 돈을 댄 투자자가 떠안아요. 사업자는 그동안 들인 노동을 잃는 셈이고요.

왜 이건 죄가 아닐까요? 이자는 사업이 잘되든 망하든 정해진 금액을 받아내는 거예요. 무다라바는 돈을 댄 사람도 함께 손해를 볼 수 있죠. 위험을 같이 지니까 대가를 받아도 된다는 논리예요. 이슬람 금융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어요. 전 세계 이슬람 금융 자산은 수조 달러 규모에 이르고, 말레이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에서 활발하게 굴러가고 있어요.

칼뱅이 문을 열고, 애덤 스미스가 못을 박았어요

그렇다면 기독교 세계에서는 이자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게 됐을까요. 전환점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에 찾아와요.

16세기,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 중요한 주장을 해요. 성경이 금지한 건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고리대금이지, 합리적인 이자까지 금지한 건 아니라는 거예요. 칼뱅은 이자를 전면 허용한 게 아니라 적정 수준의 이자는 괜찮다는 입장이었어요. 상업이 발달하면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경제에 꼭 필요해졌으니까요.

이 생각이 퍼지면서 유럽 각국은 하나둘 이자를 합법화하기 시작해요.

  • 1545년 : 영국이 연 10% 이하의 이자를 합법화

  • 이후 네덜란드, 프랑스 등도 이자를 허용

'돈의 역사' 시리즈에서 봤던 영국 금세공사들, 그러니까 남의 금을 맡아주다 은행이 된 사람들이 대출 이자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변화가 먼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그리고 서기 1776년,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이자를 경제 활동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설명해요. 이때부터 이자는 도덕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경제의 기본 원리로 자리를 잡게 되죠.

금지하는 대신 관리하기로 했어요

1,000년 넘게 이어진 이 이야기가 남긴 교훈은 하나예요. 이자를 금지해도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금지하면 몰래 돌아가거나, 유대인 대금업처럼 우회로가 생기거나, 이슬람 금융처럼 아예 다른 형태로 바뀌었죠.

결국 사회는 이자를 없애는 대신 이자를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함무라비 법전이 이자율 상한을 정해뒀던 것처럼요. 지금도 각국은 법정 최고 이자율을 두고 있고, 한국의 법정 최고 이자율은 연 20%예요.

그래서 지금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이자를 두고 옳으냐 그르냐를 다퉜는데, 지금 우리가 은행 앱을 열어서 하는 일은 그 질문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자를 받아도 되는지 묻지 않고, 어느 쪽 조건이 나은지만 비교하죠. 논쟁에서 한쪽이 이긴 게 아니라, 논쟁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잊힌 거예요.

그 전환은 우리가 쓰는 말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예금 상품을 고를 때 우리는 "이래도 되나"가 아니라 "어디가 더 주나"를 묻잖아요. 이자는 도덕의 언어에서 조건의 언어로 자리를 옮긴 거예요.

다만 질문이 사라진 건 아니라 바뀌었어요. 이자를 받아도 되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받아도 되느냐로요. 법이 최고 이자율에 선을 긋는 것도 그 오랜 논쟁이 남긴 흔적이고요.

그래서 통장이나 대출 계약서를 열 때 필요한 건 죄책감이 아니에요. 1화에서 세운 질문 하나면 돼요 : 이 이자는 무엇의 값인가. 내가 내준 시간의 값인지, 누군가 떠안은 위험의 값인지. 그걸 따져 물을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수천 년치 논쟁이 남겨준 결과예요.

다음 화에서는 그 조건 안쪽으로 들어가요. 이자가 붙는 두 가지 방식, 단리와 복리. 같은 이자율인데도 왜 한 해라도 먼저 시작한 사람이 훌쩍 앞서가는지, 그 구조를 숫자로 들여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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