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창구에 앉으면 이런 질문을 받아요. "상환 방식은 원리금균등으로 하실 건가요, 원금균등으로 하실 건가요?" 대부분 여기서 말문이 막혀요. 그런데 같은 금액을 같은 금리로 빌려도 갚는 방법 하나 때문에 총 이자가 수천만 원씩 차이 나요. 이번 화를 읽고 나면 그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답할 수 있어요.
창구에서 말문이 막히는 순간
8화까지는 기준금리가 어떻게 내 예금과 대출 금리까지 흘러오는지를 따라가 봤어요. 이번 화부터는 드디어 대출 이야기예요.
대출은 많은 사람이 가장 궁금해하는 주제인데, 막상 은행에 가면 상황이 달라져요. 상담 직원이 쏟아내는 용어에 눌려서 정작 따져야 할 걸 못 따지고 나오게 되거든요. 원리금균등, 원금균등, 거치 기간 같은 말이 한꺼번에 나오면 그냥 고개를 끄덕이게 돼요.
그래서 이번 화에서는 대출을 갚는 방법들을 하나씩 뜯어볼 거예요. 어려운 계산이 아니라, 각 방식이 내 통장에서 언제 얼마를 빼가는지를 보는 거예요.
대출은 결국 '언제 원금을 줄이느냐'의 문제예요
대출 자체는 단순해요. 돈을 빌리고, 이자를 붙여서 갚는 것. 이게 전부예요.
4화에서 은행은 예금으로 돈을 모아 대출로 빌려주고 그 차이인 예대마진으로 돈을 번다고 했죠. 대출은 그 구조의 반대편이에요. 은행 입장에서는 빌려주는 것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빌리는 거예요.
여기서 핵심이 하나 있어요. 이자는 아직 갚지 않은 원금에만 붙어요. 그러니까 원금을 빨리 줄이면 이자가 붙을 몸집이 작아지고, 천천히 줄이면 그만큼 오래 이자를 물어요. 상환 방식이란 결국 원금을 언제부터 얼마나 줄여나갈지에 대한 시간표인 셈이에요.
이 시간표는 크게 네 가지예요.
만기일시상환
원금균등상환
원리금균등상환
체증식상환
이름은 딱딱하지만 하나씩 풀면 어렵지 않아요. 비교가 눈에 들어오도록 예를 들어 1억 원을 연 5% 금리로 10년간 빌렸다고 가정하고 볼게요. 계산을 단순하게 만들려고 잡은 숫자이지, 실제로 받게 될 금리는 상품과 신용도에 따라 달라져요.
만기일시상환 - 이자만 내다가 마지막에 한 방
가장 단순한 방식이에요. 대출 기간 동안에는 이자만 내고,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거예요.
1억 원을 연 5%로 빌렸으면 1년 이자가 500만 원이고, 12로 나누면 매달 약 42만 원이에요. 이 이자만 내요. 10년 동안 쭉 그 금액이에요. 그리고 10년 뒤에 1억 원을 한 번에 갚아요.
매달 나가는 돈은 네 가지 중 가장 적어요. 하지만 원금이 단 한 푼도 줄지 않으니까 이자가 붙을 몸집이 10년 내내 그대로예요. 그래서 총 이자가 가장 많아요. 약 5,000만 원이에요. 빌린 돈의 절반을 이자로 더 내는 셈이죠.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가 남아요. 마지막에 1억 원이라는 목돈을 통째로 마련해야 해요. 그 돈이 없으면 대출을 연장하거나 다른 대출로 갈아타야 하는 상황이 생겨요. 그 시점에 금리가 올라 있으면 조건은 더 나빠져요.
원금균등과 원리금균등 - 무엇을 '똑같이' 맞출 것인가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지만, 차이는 한 글자예요. 원금을 똑같이 나눌 것인가, 매달 내는 돈 전체를 똑같이 맞출 것인가.
원금균등상환은 원금을 대출 기간으로 똑같이 나눠서 갚아요. 1억 원을 120개월로 나누면 매달 원금 약 83만 원이에요. 여기에 남은 원금에 붙는 이자가 더해져요. 첫 달에는 원금 83만 원에 이자 42만 원을 더해 약 125만 원을 내요. 꽤 묵직하죠.
대신 원금을 갚아나갈수록 남은 원금이 줄어드니까 이자도 같이 줄어요. 마지막 달이 되면 남은 원금이 83만 원뿐이라 거기 붙는 이자는 약 3,500원이에요. 그 달에 내는 돈은 원금 83만 원에 이자 3,500원을 더한 약 83만 원이고요. 처음에 많이 내고 점점 가벼워지는 구조예요. 총 이자는 약 2,520만 원으로 네 가지 중 가장 적어요.
원리금균등상환은 원금과 이자를 합친 금액을 매달 똑같이 내요. 같은 조건이라면 매달 약 106만 원씩, 첫 달도 106만 원, 마지막 달도 106만 원이에요.
그러면 그 안에서 원금과 이자 비율은 어떻게 될까요. 내는 금액은 같아도 구성은 계속 바뀌어요.
1회차 : 원금 64만 원 + 이자 42만 원
60회차(5년 차) : 원금 82만 원 + 이자 24만 원
120회차(마지막) : 원금 약 105만 6천 원 + 이자 약 4,400원
처음에는 내는 돈의 거의 절반이 이자로 빠져요. "갚아도 갚아도 원금이 안 줄어드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자 비중이 줄고 원금 비중이 커져서, 후반에는 대부분이 원금 상환으로 들어가요. 총 이자는 약 2,750만 원이에요.
둘을 비교하면 이래요. 원금균등은 이자를 약 230만 원 덜 내는 대신 초반 부담이 무겁고, 원리금균등은 이자를 조금 더 내는 대신 매달 나가는 돈이 고정이라 생활비 계획을 세우기 쉬워요.
체증식상환 - 처음엔 적게, 갈수록 많이
원리금균등의 반대라고 생각하면 돼요. 초반에는 적게 내고, 시간이 지날수록 갚는 금액이 점점 늘어나요.
왜 이런 방식이 있을까요. 앞으로 소득이 늘어날 사람을 위해서예요. 사회초년생이나 젊은 직장인은 지금 월급이 적지만 경력이 쌓이면 소득이 올라가잖아요. 지금 당장 많이 갚기는 어렵지만 나중에는 감당할 수 있으니까, 그 흐름에 상환 일정을 맞추는 거예요.
같은 조건으로 보면 첫 달에는 약 75만 원만 내요. 원리금균등 106만 원, 원금균등 125만 원과 비교하면 훨씬 가볍죠. 대신 마지막 달에는 약 138만 원까지 올라가요. 총 이자는 약 2,800만 원으로 원리금균등보다 조금 많아요. 초반에 원금을 적게 갚는 만큼 이자가 더 붙는 구조예요.
주의할 점이 하나 있어요. 이 방식은 "앞으로 소득이 늘어난다"는 전제 위에 서 있어요. 소득이 예상만큼 오르지 않으면 후반부 금액이 그대로 부담으로 돌아와요. 그래서 아무 대출에나 붙는 옵션이 아니고, 한국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 같은 특정 상품에서만 선택할 수 있어요.
네 가지를 나란히 놓고, 거치 기간까지
같은 1억 원, 연 5%, 10년 기준으로 정리하면 이래요.
만기일시상환 : 매달 약 42만 원(이자만), 만기에 1억 원 상환, 총 이자 약 5,000만 원
원금균등상환 : 매달 125만 원에서 83만 원으로 감소, 총 이자 약 2,520만 원
원리금균등상환 : 매달 약 106만 원 고정, 총 이자 약 2,750만 원
체증식상환 : 매달 75만 원에서 138만 원으로 증가, 총 이자 약 2,800만 원
총 이자만 보면 원금균등이 가장 유리해요. 하지만 초반에 매달 125만 원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감당 못 해서 연체가 나면 이자를 아낀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결국 "어떤 방식이 정답이다"가 아니라 "내 상황에 맞는 방식이 뭐냐"가 중요해요.
상담에서 하나 더 듣게 되는 말이 거치 기간이에요. 대출을 받고 나서 일정 기간 동안 원금은 안 갚고 이자만 내는 기간이에요. 본격적으로 갚기 전에 숨 돌릴 시간을 주는 거죠. "거치 1년, 원리금균등 9년"이라면 처음 1년은 이자만 내고 그다음 9년 동안 원리금을 갚아요.
거치 기간이 있으면 초반 부담은 확실히 줄어요. 하지만 원금을 줄이기 시작하는 시점이 그만큼 밀리니까 총 이자는 늘어나요. 거치 기간은 공짜가 아니에요. 시간을 사는 대신 이자를 더 내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대출 계약서에서 금리만큼 중요한 줄이 상환 방식이에요. 같은 돈을 같은 금리로 빌려도 총이자는 달라져요. 이자는 언제나 남아 있는 원금에만 붙으니까, 원금을 얼마나 빨리 줄여 나가느냐가 내가 은행에 내는 이자의 총액을 정하거든요.
그래서 고를 때 기준은 하나예요. 매달 얼마를 감당할 수 있는가. 초반이 무거워도 이자를 아끼고 싶으면 원금균등, 매달 같은 금액이 편하면 원리금균등이에요. 거치 기간을 두는 것도 같은 눈으로 보면 돼요. 원금을 손대지 않는 동안 내 대출은 만기일시상환처럼 굴러가니까요. 월 상환액이 적다는 말과 이자를 적게 낸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에요.
오늘 확인해볼 건 두 가지예요. 첫째, 내 대출의 상환 방식과 거치 기간. 은행 앱의 대출 상세 화면이나 계약서 첫 장에 다 적혀 있어요. 둘째, 상환 스케줄표를 열어 이번 달에 낸 돈에서 원금과 이자가 각각 얼마였는지 보는 거예요. 원금 칸이 생각보다 작다면, 내 대출은 아직 이자를 갚고 있는 구간에 있는 거예요.
여윳돈이 생겼을 때 중도상환이 강력한 이유도 여기 있어요. 원금을 미리 줄이면 그 뒤에 붙을 이자가 통째로 사라지니까요. 다만 중도상환수수료 기간이 남아 있는지는 같이 확인해 보세요. 다음 화에서는 대출에서 빠질 수 없는 질문을 다뤄요.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중에 뭘 골라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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