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세요. 아끼고, 저금해라. 그런데 통장을 열어보면 1년 이자가 생각보다 초라해요. 부모님이 틀린 걸까요, 아니면 그사이 돈의 환경이 바뀐 걸까요. 이 시리즈의 마지막은 이 질문에서 시작할게요.
예금 금리 20%의 시대가 있었어요
답의 절반은 금리에 있어요. 1980년대 한국의 정기예금 금리는 보통 연 10~20%였어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믿기지 않는 숫자죠.
숫자로 옮겨볼게요. 1억 원을 은행에 넣어두면 1년 뒤에 이자만 1,000~2,000만 원이 들어왔어요. 투자를 공부한 것도 아니고, 어떤 상품을 고를지 고민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맡겨두기만 해서요.
여기에 3화에서 배운 복리를 얹으면 더 놀라워요. 예를 들어 금리 15%로 10년만 두면 1억이 약 4억이 돼요. 20년이면 16억이고요. 물론 이건 금리가 계속 유지된다고 가정한 계산이지만, 그 시절의 체감을 보여주기엔 충분해요.
그래서 그 시대에는 "열심히 일하고, 아끼고, 저금하면 부자가 된다"는 말이 그냥 덕담이 아니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됐거든요. 부모님 세대가 저축을 강조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지금 내 통장에 찍히는 이자
그럼 지금은 어떨까요. 2026년 8월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연 2.75%예요. 7월 1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2.50%에서 한 차례 올린 수준이고, 다음 회의는 8월 27일에 열려요.
기준금리를 따라 움직이는 예금 금리도 비슷한 자리에 있어요. 시중은행 1년 정기예금은 연 2.9~3.2%, 조금 더 주는 저축은행은 연 3.4~3.6% 정도예요.
같은 방식으로 계산해볼게요. 1억 원을 시중은행 1년 정기예금에 넣으면 이자는 300만 원 언저리예요. 부모님 세대가 받던 1,000~2,000만 원과 비교하면 3분의 1에서 6분의 1 수준이죠.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지금 금리가 낮다는 게 아니에요. 금리는 오르내리기 마련이니까요. 문제는 예금 이자만으로 재산이 불어나던 시대 자체가 끝났다는 점이에요.
물가를 빼고 나면 남는 것
이자를 제대로 보려면 물가를 같이 봐야 해요. 12화에서 물가 상승률은 매년 약 2%를 목표로 한다고 했죠. 통장에 들어온 이자에서 6화에서 본 이자소득세 15.4%를 떼고, 거기서 물가가 올린 만큼까지 빼야 진짜로 내가 번 돈이에요.
예금 금리가 3%면 세금을 떼고 2.5%쯤 남아요. 여기서 물가 2%를 빼면 실제로 불어나는 건 0.5% 남짓이에요. 1억 원을 1년 꼬박 맡겨서 50만 원 정도인 셈이죠.
부모님 세대는 달랐어요. 물가가 높던 시절이라 해마다 사정이 들쭉날쭉했지만, 금리가 물가를 넉넉히 웃도는 해에는 예금만으로도 재산이 눈에 띄게 불어났거든요.
같은 "저축"이라는 행동인데, 시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랐던 거예요. 부모님이 게으르지 않았듯, 우리가 특별히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돈이 놓인 환경이 달라졌을 뿐이에요.
금리는 왜 이렇게 낮아졌을까
금리가 높았던 건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에요. 1960~90년대 한국은 연 8~10%씩 경제가 커졌어요.
기업들은 공장을 짓고, 수출을 늘리고, 사업을 확장하느라 돈이 급했어요. 은행은 그 기업들에 빌려줄 돈을 모아야 했고, 그러려면 예금자에게 높은 이자를 줘야 했죠. 경제가 빠르게 커지니까 높은 이자를 줘도 은행이 충분히 남길 수 있었어요.
6화에서 금리는 이자의 가격표라고 했죠. 그 가격표도 결국 수요를 따라가요. 돈을 빌리겠다는 사람이 많으면 올라가고, 적으면 내려가는 거예요.
지금 한국 경제 성장률은 연 2% 안팎이에요. 경제가 천천히 크니까 돈을 급하게 찾는 곳도 줄었고, 그래서 금리도 낮은 자리에 머무는 거예요. 이건 한국만의 이야기도 아니에요. 미국,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은 전부 비슷한 흐름을 겪었어요.
"아끼면 부자가 된다"는 이제 틀린 말일까
아끼는 건 여전히 중요해요.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으면 어떤 시대에도 자산은 늘지 않으니까요. 절약은 지금도 모든 것의 출발점이에요.
다만 "아끼고 저축만 하면 부자가 된다"는 더 이상 이 시대에 맞는 전략이 아니에요.
부모님 세대에는 저축 자체가 곧 투자였어요. 은행에 넣어두기만 해도 돈이 빠르게 불었으니까요. 은행 예금이 그 시절 최고의 금융 상품이었던 거예요. 따로 무언가를 고를 이유가 없었죠.
우리 세대는 달라요. 예금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을 겨우 이기는 수준이에요. 돈의 가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빠듯한데, 자산을 불리겠다면 예금 하나로는 부족해요.
그래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얼마나 아낄까"에서 "이 돈을 어디에 둘까"로 옮겨가요.
저축과 투자, 역할을 나눠야 해요
저축과 투자는 우열이 아니라 역할이 다른 거예요.
저축은 돈을 지키는 일이에요. 비상금, 결혼 자금, 전세 보증금처럼 정해진 시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돈은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이나 적금에 둬야 해요. 이 돈은 수익률보다 안전이 먼저예요. 6개월 뒤에 꼭 써야 할 돈이 그때 반 토막 나 있으면 곤란하니까요.
투자는 돈을 불리는 일이에요. 당장 쓸 일이 없는 여유 자금, 오래 두고 모아갈 수 있는 돈은 주식, 채권, 부동산 같은 자산에 나눠 담아야 해요. 위험이 따르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인플레이션을 이기고 자산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에요.
정리하면 이래요.
단기 + 반드시 필요한 돈 → 저축 (예금, 적금)
장기 + 여유 자금 → 투자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돈의 환경이 바뀌었으니, 돈을 다루는 방법도 바뀌어야 해요. 부모님 세대의 정답을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니라, 그 정답이 왜 정답이었는지를 이해하고 지금에 맞게 다시 짜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부모님이 "아껴서 저금해라"라고 하실 때, 그건 잔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겪은 성공담이에요. 정기예금 금리가 10~20%이던 시절에는 1억을 맡기면 1년에 이자만 1,000~2,000만 원이 들어왔으니까요. 그 시대에는 저축이 곧 투자였어요.
지금 같은 자리에 1억을 넣으면 이자는 300만 원 언저리이고, 여기서 세금과 물가를 빼고 나면 실제로 불어나는 건 50만 원 남짓이에요. 우리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돈의 환경이 바뀐 것뿐이고요. 그러니 부모님 말씀도 버릴 게 아니라 번역해서 들으면 돼요. 아끼라는 말은 지금도 맞아요. 다만 저금만 하면 된다는 대목은 그 시절 금리에 붙어 있던 말이에요.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건 통장을 용도별로 갈라두는 거예요. 6개월 안에 쓸 돈, 3년 안에 쓸 돈, 언제 쓸지 정해지지 않은 돈. 이 세 덩어리로 나누기만 해도 절반은 정리돼요. 앞의 두 덩어리는 쓸 날짜가 정해진 돈이라 수익보다 안전이 먼저고,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과 적금의 자리예요. 투자를 고민할 수 있는 건 세 번째 덩어리뿐이고요.
1화에서 우리는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씨앗 이야기로 시작했어요. 이자가 생겨나고, 은행이 만들어지고, 금리가 경제를 움직이는 구조를 하나씩 따라왔죠. 이제 예금과 적금의 차이를 알고, 대출 상환 방식을 비교할 수 있고, 신용점수가 왜 중요한지도 알아요. 여기까지가 돈을 지키는 법이에요.
남은 건 세 번째 통장이에요. 언제 쓸지 정해두지 않은 그 돈을 어디에 둘 것인가. '증권과 투자' 시리즈에서 주식, 채권, 펀드, ETF로 그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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