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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시리즈/[3부] 증권과 투자

증권과 투자 2화 : 주식의 탄생 - 배 한 척에 전 재산을 걸 수 없었던 사람들

1화에서 투자란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에 돈을 대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개념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요?

주식이라는 게 원래부터 있었던 건 아니에요. 아주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예요.

그 문제란, "항해가 너무 위험하다"는 거였어요.


후추 한 알이 금값이던 시대

16세기 유럽에서 향신료는 어마어마하게 비쌌어요. 후추, 정향, 육두구 같은 것들이요. 지금은 마트에서 몇 천 원이면 살 수 있지만, 당시에는 같은 무게의 금과 맞먹었어요.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 음식의 보존과 맛을 책임지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거든요.

이 향신료는 인도네시아, 인도 같은 아시아에서만 났어요. 배를 타고 가서 사 오면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었어요. 첫 항해에 성공한 상인은 투자금의 4배 수익을 올리기도 했죠.

문제는 "갈 수 있다면"이라는 조건이었어요.


항해는 도박이었다

유럽에서 아시아까지는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야 했어요. 편도만 6개월 이상. 폭풍에 침몰할 수 있고, 해적을 만날 수도 있고, 선원들이 질병으로 죽기도 했어요.

배 한 척에 전 재산을 걸었다가, 그 배가 침몰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 거예요. 1화에서 배운 "위험과 수익은 비례한다"는 원칙이 가장 극단적으로 작동하던 시대였어요.

그래서 상인들은 생각했어요. "혼자 위험을 다 지지 말고, 여러 명이 나눠서 지면 안 될까?"

여러 명이 돈을 모아 배를 보내고, 돌아오면 이익을 나눠 갖는 방식은 이미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이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항해가 끝날 때마다 해산하고 다시 모아야 하는 한계가 있었죠.

그러다 1602년, 네덜란드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 등장해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1602년 3월 20일, 네덜란드 정부는 여러 무역 회사를 하나로 합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를 설립했어요.

이 회사가 특별했던 건, 일반 시민 누구나 투자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회사 규정에 "이 땅의 모든 거주민은 이 기업의 주식을 구매할 수 있다"고 명시했어요. 부자가 아니어도, 상인이 아니어도 투자할 수 있었던 거예요.

총 1,143명이 투자했고, 모인 돈은 약 650만 길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어요.

투자한 사람들은 "주식"이라는 증서를 받았어요. 회사가 이익을 내면, 투자 금액에 비례해서 이익을 나눠받을 수 있었어요. 이게 바로 배당이에요.

실제로 VOC는 세계 최초로 정기 배당을 지급한 회사이기도 해요. 처음 10년은 배를 만들고 항로를 개척하느라 배당이 없었지만, 향신료 무역이 본격화되면서 매년 지분 가치의 약 18%를 배당했어요. 200년 가까이요. 지금 고배당주가 4~5%인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준이죠. 한 번 주식을 사면 매년 꾸준히 돈이 들어오는 구조 - 이게 주식 투자의 매력이었어요.


증권거래소의 탄생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돈을 투자했는데, 갑자기 현금이 필요하면 어떡하죠?

회사에 가서 "내 돈 돌려줘"라고 할 수는 없었어요. 그 돈은 이미 배를 사고, 선원을 고용하는 데 쓰였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주식 자체를 다른 사람에게 팔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주식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1609년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만들어졌어요. 지금 우리가 아는 주식시장의 원형이 여기서 시작된 거예요.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VOC의 구조는 지금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요. 회사가 돈이 필요하고, 여러 사람이 투자하고, 주식을 받고, 이익이 나면 배당을 받고, 필요 없어지면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어요. 400년 전 네덜란드 시민이 VOC에 투자한 것은, 지금으로 치면 회사가 처음 주식을 발행할 때 참여한 것에 가까워요. 지금 우리가 삼성전자 주식을 사는 건, 이미 발행된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서 사는 거라 돈이 흘러가는 경로는 좀 달라요. 하지만 "회사의 성장에 돈을 대고, 그 성과를 나눈다"는 큰 틀은 같아요.


이번 화 정리

  • 주식은 "항해가 너무 위험해서, 여러 명이 돈을 모아 위험을 나누자"는 필요에서 탄생했어요
  •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세계 최초로 일반 시민에게 주식을 발행했어요
  • 투자자는 주식(증서)을 받고, 이익이 나면 배당을 받았어요. VOC는 약 200년간 연 18%를 배당했어요
  •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기 위해 1609년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가 만들어졌어요

다음 화에서는 주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뜯어볼 거예요. 주가는 어떻게 정해지는지, 시가총액은 뭔지, 배당은 어떻게 받는지, 주식을 사기 전에 알아야 할 기본 용어들을 정리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