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시리즈/[2부] 은행과 금리

은행과 금리 2화 : 이자는 죄악인가?, 종교와 이자의 전쟁

부와 함께하는 경제이야기 2026. 2. 15. 13:02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자의 탄생을 살펴봤어요.

기원전 3000년 수메르 시대부터 사람들은 곡물과 은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어요. 함무라비 법전에는 이자율 상한까지 정해져 있었죠.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이 돈을 낳는 건 부자연스럽다"고 비판했어요. 이 생각이 이후 수천 년간 세계를 지배하게 돼요.

"이자를 받는 건 죄악이다."

이 믿음이 역사를 어떻게 바꿨는지 함께 살펴볼게요.


기독교 : "이자를 받지 마라"

기독교에서 이자를 금지한 근거는 성경이에요.

구약성경 출애굽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네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줄 때, 고리대금업자처럼 이자를 받지 말라."

신약성경 누가복음에서도 예수는 말해요.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주어라."

초기 기독교는 이 가르침을 엄격하게 지켰어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성직자가 이자를 받으면 파면한다고 결정했어요. 이후 8세기 카를 대제 시대에는 평신도에게까지 이자 금지가 확대됐고요.

중세 유럽에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건 "고리대금(usury)"이라 불렸고, 이건 도둑질, 살인과 같은 수준의 중죄로 취급됐어요. 이자를 받다 적발되면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추방될 수도 있었죠.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문제는, 사회가 돌아가려면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예요.

농부는 씨앗을 사려면 봄에 돈이 필요해요. 상인은 물건을 떼오려면 자본이 필요하고요. 왕은 전쟁 비용이 급하고요. 근데 이자를 받으면 죄악이라니?

돈을 빌려줬는데 아무 대가도 못 받는다면, 누가 빌려주겠어요? 1화에서 봤듯이 빌려주는 사람은 시간과 위험을 감수하는 건데요.

현실의 수요와 종교의 금지 사이에서, 역사는 묘한 해결책을 만들어냈어요.


유대인과 대금업

중세 유럽에서 기독교인은 이자를 받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유대교의 율법은 조금 달랐어요.

유대교도 이자를 금지하긴 했지만, "동족끼리"만 금지했어요. 구약성경 신명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네 형제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 그러나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즉, 유대인끼리는 이자를 못 받지만, 기독교인에게 빌려줄 때는 이자를 받을 수 있었던 거예요.

여기에 중세 유럽의 사회 구조가 겹쳤어요. 당시 유대인은 기독교 사회에서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고, 길드(직업 조합)에도 가입할 수 없었어요. 농사도, 수공업도 할 수 없었던 거죠.

결국 유대인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가 돈을 빌려주는 일이었어요.

기독교인은 이자를 못 받으니까 대금업을 안 하고, 유대인은 이방인에게 이자를 받을 수 있으니까 대금업을 하게 된 거예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할을 유대인이 떠맡게 된 셈이죠.

하지만 이건 양날의 검이었어요. 돈이 급할 때는 유대인 대금업자를 찾지만, 평소에는 "돈으로 돈을 버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멸시했거든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대금업자 샤일록이 바로 이런 편견을 보여주는 캐릭터예요.

유대인에 대한 반감의 뿌리 중 하나가 바로 이 중세 대금업 역사에 있어요.


이슬람 : 지금도 이자를 금지한다

이슬람에서는 이자를 "리바(Riba)"라고 부르고, 코란에서 명확하게 금지해요.

"알라는 매매를 허용하셨으나 리바는 금지하셨다." (코란 2:275)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슬람이 이자를 금지하면서도 금융 시스템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대신 이자 없이 돈이 돌아가는 독자적인 방법을 만들었어요.

예를 들면 "무다라바(Mudarabah)"라는 방식이 있어요. 돈을 가진 사람(투자자)과 사업 능력이 있는 사람(사업자)이 파트너를 맺는 거예요. 이익이 나면 미리 정한 비율로 나누고, 손실이 나면 투자자가 부담해요.

이게 뭔가 익숙하지 않나요? 이건 본질적으로 주식 투자와 비슷한 구조예요! 고정된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사업의 성과를 함께 나누는 방식이죠.

이슬람 금융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어요. 전 세계 이슬람 금융 자산 규모는 수조 달러에 달하고,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요.


이자가 "합법"이 되기까지

그렇다면 기독교 세계에서는 이자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게 됐을까요?

전환점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에 찾아왔어요.

16세기,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 중요한 주장을 해요. "성경이 금지한 건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고리대금이지, 합리적인 이자까지 금지한 건 아니다."

칼뱅은 이자를 전면 허용한 게 아니라, 적정 수준의 이자는 괜찮다는 입장이었어요. 상업이 발달하면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경제에 꼭 필요해졌으니까요.

이 생각이 퍼지면서, 유럽 각국은 하나둘씩 이자를 합법화하기 시작했어요.

  • 1545년 : 영국, 연 10% 이하의 이자를 합법화
  • 이후 네덜란드, 프랑스 등도 이자를 허용

돈의 역사 4화에서 봤던 영국 금세공사들이 보관료를 받고 대출 이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예요.

그리고 18세기,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이자를 경제 활동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설명하면서, 이자는 더 이상 도덕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경제의 기본 원리로 자리 잡게 돼요.


5,000년간의 논쟁이 남긴 것

이자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를 돌아보면, 결국 이런 흐름이에요.

 

고대 : 이자가 자연스럽게 존재 (수메르, 바빌로니아) 

고대 그리스 : "부자연스럽다"는 철학적 비판 (아리스토텔레스) 

중세 : 종교가 이자를 금지 (기독교, 이슬람) 

르네상스 : "적정한 이자는 괜찮다" (칼뱅) 

근대 : 이자가 경제의 기본 원리로 정착 (애덤 스미스)

 

흥미로운 건, 이자를 금지해도 대출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금지하면 음성적으로 돌아가거나, 유대인 대금업처럼 우회로가 생기거나, 이슬람 금융처럼 다른 형태로 진화했죠.

결국 사회는 이자를 없애는 대신, 이자를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함무라비 법전이 이자율 상한을 정했던 것처럼, 지금도 각국은 법정 최고 이자율을 정해두고 있죠. 한국은 현재 연 20%가 법정 최고 이자율이에요.


이번 화 정리

  • 기독교는 성경에 근거해 이자를 중죄로 금지했어요
  • 사회의 필요 때문에 유대인이 대금업을 떠맡게 됐고, 이게 반유대 편견의 뿌리 중 하나가 됐어요
  • 이슬람은 지금도 이자를 금지하지만, 이익 공유 방식으로 금융 시스템을 운영해요
  • 16세기 칼뱅이 "적정한 이자는 괜찮다"고 주장하면서 전환점이 됐어요
  • 결국 인류는 이자를 없애는 대신, 관리하는 쪽을 선택했어요

다음 화에서는 드디어 숫자 이야기를 해볼 거예요. 이자가 붙는 두 가지 방식, 단리와 복리. "세계 8번째 불가사의"라고 전해지는 복리의 마법, 그리고 이걸 알면 왜 1년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중요한지가 보여요.